2010.03
[171호] 영화 : 레볼루셔너리 로드 - 사랑의 완성은 결혼?
// Document: http://www.nudasim.com/zbxe/37662 2010.03.09 21:23:22 (*.162.51.211) Category: 영화와 드라마0 Comments 1289 Views
11년 전 <타이타닉>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두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이들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이룬 사랑’으로 만났다. 이들의 사랑을 이뤄낸 것은 <아메리칸 뷰티>로 유명한 영화감독 샘 멘디스이다. 그가 소위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불리는 미국 작가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의 데뷔작을 영화화하였다. 예이츠가 1961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은 문학계에서 걸작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비극적 결말 때문에 대중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그러다가 1992년 예이츠가 죽고 나서야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역시 원작 소설처럼 작품성은 출중했고, 원작이나 감독, 배우 모두 뛰어남에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미국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외면할 수 없기에 더욱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삶의 현주소, 사랑의 종착역인 결혼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이유 말이다.
사람들에게 영화는 암울한 현실을 보상해 주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롭고 단조로운 반복되는 일상, 아니 짜증나고 화나고 괴로워서 폭발하고 싶은 자신의 삶이 잘못된(abnormal) 것일 뿐, 원래(normal) 삶이란 아름답고 환희에 차 있는 것임을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누군가의 삶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잘못된 삶과 타인의 그럴듯한 삶의 비교가 슬픔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생각은 삶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삶과 자신의 삶도 원래의 것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희망과 기대.
그러나 작가와 감독은 대중의 희망과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삶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한술 더 떠서 <타이타닉>에서 누구나 꿈꾸었을 법한 사랑을 했던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발탁하여,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뭉갰다. 이루지 못하여 더욱 애절해 보였던 사랑이 이루어졌더라도 우리의 사랑과 삶은 기대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훨씬 아름다울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자신의 삶과 욕구에 대하여 명확하지 지각하지 못한 20대 청년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연기 지망생인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바에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 사랑의 결과 아기가 생겼고, 별다른 대안도 없었기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시내 외곽에 자리잡은 조용한 동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이층집을 얻어서 가정을 꾸렸다. 첫 아이가 실수가 아닌 사랑의 열매였음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한 명의 아이를 더 낳아,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이들. 이들의 삶은 대부분 그렇듯이 단조롭다. 프랭크는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그대로 다니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고 월급이 그리 많지도 않은 직장에 다닌다. 가장이라는 책임을 다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인 에이프릴 역시 여느 아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꾸준하게 연극무대에 섰지만,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마땅한 탈출구도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가정주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프릴은 남편 프랭크가 젊은 시절 사진을 한 장 발견한다. 파리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그 날 저녁 에이프릴은 남편 프랭크에게 놀랄 만한 제안을 한다. 파리에 가서 살자는 것이다. 자신이 정부기관에서 비서로 일할 테니, 프랭크는 가족부양의 짐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면서 말이다. 프랭크는 뜬금없는 제안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후에는 매우 확신하게 되었고 몇 개월 남지 않은 프랑스 이민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프랭크는 우연치 않게 회사에 큰 이익을 남겨주게 되었고, 사장의 고액연봉을 제시하자 프랭크는 마음이 흔들렸다. 때마침 에이프릴이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민을 포기하게 된다. 에이프릴은 아기를 지워서라도 이민을 가자고 하였다. 이로 인해서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하고 만다. 여느 부부나 그렇듯이 그 동안의 불만을 모두 분출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상대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려고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려고 하였다. 서로를 비난하고, 판단하였다. 소리를 지른다. 여자는 말로 공격하고 남자는 몸으로 공격한다. 싸움의 결과로 이민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에이프릴은 낙태로 인한 과도한 출혈로 자신의 삶을 꿈처럼 허망스럽게 끝내고 말았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함께 사는 행위이다. 결혼은 찬란히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결혼 이전의 청춘남녀들은 결혼이 삶의 목적이라도 되는 냥 온갖 스펙을 준비한다. 좋은 직장과 경제적 능력, 외모까지도 준비한다.
하지만 정말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일까? 보통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혼하지는 못한 남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고 하는데, 과연 사랑을 이루면(결혼하면) 좋을까? 적어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No라고 답한다.
결혼은 서로에 대한 약속이다. 가능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함께 하겠다는 서약이다. 당연히 결혼한 사람이 혼자서는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민을 가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가 합의하에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불편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두 사람의 성향이나 생각, 삶의 지향과 목적이 다를 때 이러한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결혼이 한편으로는 사랑의 완성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족 공동체의 시작이다. 부모형제는 선택할 수 없지만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부모형제와는 쉽게 갈라서지 못해도 부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모형제는 포기하고 살 수 있지만, 배우자는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이 아닌 이성과 결혼한다는 점에서, 결혼을 통한 우리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남자와 여자는 인간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유사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존재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판단,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동성과 사는 것이나, 동물과 사는 것도 상당히 괜찮을 듯하다. 적어도 동성은 비슷할 것이고, 동물은 순종적일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와 소통의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세상의 어떤 공동체보다 아름다우며,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친밀하고, 이 세상의 어떤 행복보다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남자는 여자를 알아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알아야 한다. 준비 없는 결혼은 사랑의 종착역이 아니라 사랑의 파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