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는 이런 열등감을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는 크든 작든 우리는 모두 숙명적으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감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때 우월감이라는 것은 타인을 능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더 많은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에서 와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발현되고 있지 않은 자신의 능력과 특성에 대한 잠재력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우리는 궁극적으로 열등감을 우리의 창조성을 깨우는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창조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좀먹는 에너지 고갈원으로 사용한다.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하고 누군가를 미워할 뿐 그 감정을 전복적인 목표이자 비전으로 세워 무언가를 내놓을 줄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열등감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열등감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우리와 타인을 비교하는 데 감정을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필시 열등감에 대한 오해이다.
아들러의 말처럼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데서 열등감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아직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통찰과 창조성의 연료로 써야 한다. 또한 열등감을 타인을 이기는 방향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이기고 더 괜찮은 나로 발전시키는데 써야 할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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